본문 바로가기

사랑하는 사랑

사랑, 감정과 이성

from Pixabay, photographer Karolina Grabowska

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 좋아함, 싫어함 등과 같은 감정과 동일한 선상에서 사랑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다르게 말하면 보통 사랑도 감정의 하나로 다루어진다.

하지만, 사랑에는 사랑을 단순히 감정이라고만 볼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살펴보자. 요즘 뉴스를 보면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많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예외적인 것은 예외적으로 두자. 보통 부모는 자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 부모의 시각에는 자녀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인다 해도 결국에는 사랑하는 것을 택한다. ‘자식이 원수야’라는 말을 늘상 입에 물고 사는 부모도 결국에는 그 자녀를 사랑하는 것을 택한다.

자녀를 원수라고 말하는 그 부모는 자녀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말로만 원수라고 뱉어내고 속으로는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태어나서 아직 옹알거릴 때의 자녀는 부모에게 너무 벅찬 사랑 그 자체이다. 마치 지독한 사랑에 빠진 연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 자녀를 바라보게 된다. 하루 종일 시시 때때로 생각 나고, 까르르 웃는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고, 끌어안고 싶고, 만지고 싶어한다.

그러던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의 말에 반대 의사를 강력히 표명하기 시작하고, 서슴 없이 부모가 가진 가치관과 정 반대의 행동을 일삼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이가 어릴 때의 감정들은 언제 그랬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사라져 버리고 답답함, 씁쓸함, 분노, 자괴감과 같은 감정이 온 마음을 가득 채워 버린다. 긍정적인 감정들 보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지배적인 감정으로 변해 버린다.

이런 상황이 되면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까? 부모에게 물어보면 단 1초도 기다리지 않고 ‘원수야 원수’라고 답하겠지만, 사랑하지 않냐고 묻는 다면 원수이지만 사랑한다고 답할 것이다. 사랑과는 동떨어진 것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지배적인 상황에서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부모와 자녀의 경우에서만 아니고 부부의 관계 속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변화를 보게 된다. 사귐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는 서로에게 뜨겁지만, 보통 2~3년 이상 시간이 지난 후에는 서로에게 부정적인 감정도 많이 쌓아가게 된다. 오래된 부부의 경우에는 보다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내가 그 놈의 정 때문에 살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가?

사랑은 설렘, 간절함, 아련함과 같은 감정을 가져오지만, 사랑이 지속되고 유지되는 것에는 그런 감정적인 부분들 보다 이성적인 부분이 더 중요해진다. 시간이 갈 수록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부부 사이에서 서로에게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뢰에 부합되는 행동을 가져야 한다. 무엇을 결정할 때, 서로의 신뢰에 영향을 미치는가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동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사소한 것이든, 사소하지 않은 것이든 신뢰를 위해 자신의 욕구(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등)에 반하는 결정을 내려야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된다.

정리하면 사랑은 감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이성적인 부분도 있다. 사랑을 유지하는 것에는 감정적인 부분보다 오히려 이성적인 부분이 중요하다.

이성적인 부분이 없는 사랑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과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감정에만 충실하고 감정에만 이끌리는 사랑? 이를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감정적 욕구에만 반응하고 행동하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사랑이라면 사람보다는 오히려 동물의 행동에 가까워 보인다. 반대로 감정적인 부분이 없는 순수하게 이성적인 사랑이라면, 그것 또한 사랑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이성적인 행동만이라면 인간이 아닌 기계도 하게 만들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 알지만 모르는 것  (0) 2022.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