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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랑

사랑, 알지만 모르는 것

우리는 ‘사랑은 이러해야 한다’거나 ‘이러한 것이 사랑이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유명한 작가는 물론 이름 좀 들어본 듯한 철학자나 심리학자, 상담사 등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사랑관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갸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면 꽤 그럴듯하고, 어떤 말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사람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모든 노래 중 가장 많은 것이 사랑에 대한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드라마에는 ‘절대’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from Pixabay, photographer Ylanite Koppens

분명히 살아가면서 자주 들으며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단어임이 분명한데도, 정작 그 ‘사랑’이 무엇인지 뜻을 말해보라고 하면 대답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신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하루 종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축구 매니아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나 팀, 인상 깊었던 경기에 대해서 물어보면 조용하고 말이 없는 성격의 사람이라도 흥분하여 폭풍처럼 말을 쏟아내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머리 속에 주식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에게 요즘 투자할 만한 기업을 물어보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열변을 토하다가 자신의 인생철학까지 주구장창 쏟아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깊이 사랑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물음에는 놀라운 반응을 보여주지만, 정작 그들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해보라고 하면 특별히 대단한 이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모르는가? 정말 사랑을 모르는가?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그 매일에서 작고 사소해 보일지라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일들을 경험하지 않는가? 무거운 짐을 끌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을 보이면,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나타나) 그런 분들을 돕는 사람을 왠만해서는 목격하지 않는가? 본인의 삶도 퍽퍽하고 쉽지 않으면서도 어렵게 모은 쌈지돈을 다른 퍽퍽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과감이 투척하는 이들에 대한 뉴스를 연말연시에는 왠만해서 듣지 않는가?  가족들, 물론 원수 같을 때도 많지만 결국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가? 일을 사랑하고, 재미있는 것을 사랑하고, 귀여운 것을 사랑하고, 멋진 것을 사랑하고, 맛있는 것을 사랑하고, 여유로움을 사랑하고, 신나는 일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지 않는가? 하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해보라면 결코 만만하지 않다.

쉬운 방법을 택한다면 사전을 찾아보면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6가지 뜻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하지만, 사전에 적혀 있는 사랑의 의미가 틀리지 않았음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수 많은 노래 가사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사랑은 이렇게 메마르지 않다. 무엇이라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마음을 촉촉하고 아련하게 만드는 분명 그 무언가가 있다. 그렇다 명확하게 이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몇 개의 단어들로 설명할 수 없는 그것, 그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사랑이다. 참으로 어렵고 오묘하다.

사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사랑 외에도 많다. ‘슬픔’이라는 녀석도 한번 살펴보자. 우리는 슬픔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경험도 풍부하고 삶에서도 적지 않게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럼에도 사랑과 비슷하게 슬픔을 정확하게 설명해보라고 하면 쉽지 않다. 슬픔은 가슴이 아픈 것이라고 말해볼 수 있다. 슬픔은 가슴이 아픈 것이라는 말 자체는 그리 어색하지 않다. 문제는 가슴이 아픈 것은 슬픔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많은 감정들이 가슴이 아픈 현상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사랑도 가슴이 아픈 현상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흔하다.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도 슬픔, 기쁨, 화남 등은 비교적 의미가 명확하다. 반면에 사랑은 그 의미가 가지는 폭이 매우 넓다. 방금 이야기한 슬픔, 기쁨, 화남 등이 사랑 속에 들어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미움이나 증오와 같이 사랑과 대척 된다고 여겨지는 감정을 제외하면 모든 감정이 다 사랑 속에 들어있다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다. 아쉬움, 아련함, 외로움, 그리움, 설래임, 따스함, 행복, 안절부절 등 떠올릴 수 있는 감정들은 모두 사랑 속에 들어있다. 그렇다면 그런 모든 감정들의 집합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 또한 쉽게 그렇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사랑은 분명히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 사랑만의 독특함이 있다. 사랑이 가지는(=사랑을 설명할 수 있는) 특성들은 하나씩 들춰보고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들을 모두 합한다고 사랑이라고 할 수 없는 오묘함이 있다. 

우리는 사랑을 알지만 잘 모른다.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참 매력적이다. 사랑은 알고 또 알아도 더 알아갈 수 있다. 시간이 지나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마주했을 때에는 우리는 과연 사랑을 충분히 알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태어나서부터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는 사랑을 배우고 또 배워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모든 시간 속에서 사랑을 배워간다.

사랑을 배우는 것에도 오묘함이 있다. 사랑은 사랑을 전달받거나 전달함으로 배워간다.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도 그런 경우가 분명히 있긴 하다. 다른 사람의 기쁨이나 슬픔의 영향으로 나도 기쁘거나 슬픔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기쁨이나 슬픔은 그런 경우보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다. 기대하고 있지 않던 휴가나 용돈이 생긴다고 상상해 보라. 상상만으로도 기쁘지 아니 한가? 하지만 사랑은 감정이 배제된 사건만으로는 경험할 수 없다. 사랑은 사람을 통해서 전해진다. 사람이 사랑을 전해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짝사랑과 같은 경우도 있지만, 짝사랑은 경우가 다르다.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단순히 목격하는 것 만으로도 짝사랑에 빠져들 수 있다. 짝사랑은 사랑이 온전히 충만해지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갑작스러운 용돈을 받거나, 열심히 준비한 경기에서 우승함으로 경험하는 기쁨은 그 기쁨으로 충분히 충만하다. 무언가 결여된 기쁨을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짝사랑의 경우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로 인해 충만해지지 않는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은 충만한 사랑에 대한 경험을 통한 사랑의 배움이다. 이러한 배움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의 전달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사랑을 배우는 방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받는 것 외의 다른 방법이 없다. 조금 어렵게 표현한다면 사랑은 사람과의 관계이 의해서만 경험하고 배울 수 있다. 더 어렵게 표현하면 사랑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경험하고 배울 수 있다. 시각을 조금 돌려서 바라보면 사랑은 혼자서는 배울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사랑을 배워가는 과정은 혼자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먼저 사랑을 배워야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외동딸이나 외동아들의 경우 자신만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에 서툴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기심과 사랑은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기적인 성향의 사랑도 있을 수 있지만 이기심과는 다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정리하면 세 가지이다. 첫째는 사랑은 누구나 경험하고 아는 것이지만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랑은 평생을 두고 배워가는 것이고, 세 번째는 사랑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경함 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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